팔레르모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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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시칠리아 주의 주도 팔레르모를 연고지로 하며 현재 세리에 B에 참가하고 있다. 주요 애칭은 로사네로(Rosanero, 이탈리아어로 "핑크와 블랙")이다. 클럽의 서포터는 "팔레르모 사람"을 의미하는 팔레르미타노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시칠리아 섬을 연고지로 하는 카타니아 SSD와의 더비는 데르비 디 시칠리아라고 불린다. SSC 나폴리와의 경기는 데르비 델 수드(남부 더비)[8] , 칼리아리 칼치오와의 경기는 데르비 델레 이조레 (섬 더비)라고하며, 매번 열띤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
유럽에서는 드문 분홍색을 팀컬러로 하는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1900년 11월 1일 창단 후 7년간은 빨강과 파랑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색상을 채택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고 여러 설이 있지만, 유니폼을 표백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핑크와 블랙이 되어 버렸다는 설이나, 창시자의 한 사람인 조지프 휘터커(Joseph Whitaker)가 승리 또는 패배한 경기 후 마신 리큐어의 '단맛과 쓴맛'을 표현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원래 팀명은 US 치타 디 팔레르모였으나 2019년 해체 후 재창단하면서 SSD 팔레르모를 팀명으로 정했고, 2020년 7월 16일 다시 팔레르모 FC로 변경했다.
2. 유니폼[편집]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역대 엠블럼[편집]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엠블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역대 순위[편집]
6. 경기장[편집]
자세한 내용은 스타디오 렌초 바르베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팔레르모 FC의 홈 구장. 라 파보리타(La Favorita)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있다.1932년 개장하였으며 펠레그리노 산을 배경으로 하여 웅장한 느낌을 주는 역사 깊은 구장이다.
7. 트레이닝 센터[편집]
자세한 내용은 팔레르모 FC 시티 풋볼 아카데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서포터즈[편집]
시칠리아 사람들의 높은 외부 이민율과 더불어 원정 경기에서도 꽤 많은 관중을 동원한다. [9]
레전드이자 레체 출신인 파브리치오 미콜리 와의 관계로 레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며 파도바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역시 같은 시칠리아 섬 내에 위치한 카타니아 SSD이다.
총 86번의 맞대결 중 26승 40무 21패를 기록 중이나 세리에 A에서는 카타니아 SSD가 6승 7무 5패로 약간 우세하다.
9. 주요 출신 선수[편집]
- 루카 토니 (2003-2005)
- 에우제니오 코리니 (2003-2007)
- 파비오 그로소 (2004-2006)
- 시모네 바로네 (2004-2006)
- 안드레아 바르찰리 (2004-2008)
- 크리스티안 자카르도 (2004-2008)
- 아마우리 (2006-2008)
- 마크 브레시아노 (2006-2010)
- 살바토레 시리구 (2006-2011)
- 파브리치오 미콜리 (2007-2013)
- 에딘손 카바니 (2007-2011)
- 시몬 키예르 (2008-2010)
- 파비오 리베라니 (2008-2011)
- 안토니오 노체리노 (2008-2011)
- 페데리코 발자레티 (2008-2012)
- 하비에르 파스토레 (2009-2011)
- 요시프 일리치치 (2010-2013)
- 파울로 디발라 (2012-2015)
- 프랑코 바스케스 (2012-2015)
- 안드레아 벨로티 (2013-2015)
- 로빈 콰이손 (2014~2018)
팔레르모 FC 명예의 전당
10. 역대 주장[편집]
11. 스쿼드[편집]
12. 괴짜(?) 구단주[편집]
팔레르모는 구단주 잠파리니를 떼놓고 설명할 수가 없는 팀이다. 부동산과 유통업 전문가 답게 장사 수완이 상당히 대담하고 효율적이었는데 빅클럽들이 유럽 내 선수들을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것을 보고, 눈을 남미로 돌려 하비에르 파스토레, 파울로 디발라, 프랑코 바스케스를 데려왔으며 남미 재능들의 가격이 오르자 발칸 반도로 눈을 돌려 아르민 바치노비치, 야스민 쿠르티치, 요십 일리치치 등 동구권 선수들을 데려와 스쿼드를 채웠다.[10]
인수 후 본인 재산으로만 약 8000만 유로를 쓸만큼 구단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세리에의 불안정한 수익 구조와 자치 단체 소유의 경기장 문제[11] 등 구단 운영에는 한계를 느끼고 셀링클럽 기조를 유지하였으며[12] 2000년대 중반 우디네세 칼초와 더불어 많은 중소클럽들의 선망을 받았다.
센세이션했지만 2부리그에서 겨우 한 시즌을 보낸 꼬마에게 클럽 레코드를 지르고, 헐값 50만 유로로 데려온 선수는 매 시즌 10골 이상을 기록하는 주포로 거듭날만큼 안목이 남달랐다. 파스토레 판매 시에는 본인의 친한 인맥까지 동원할만큼[13] 선수 매매에 적극적이었다.
특히나 파스토레 사가에서 나온 인터뷰 스킬이 명문이다.
파스토레의 한쪽 발만 4000만 유로다.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감독을 굉장히 자주 바꾸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구단 운영 16년동안 50회 이상의 감독을 경질했었다. 한 번 경질했던 감독을 몇 경기 만에 다시 선임하는 기행을 보이는 등 팔레르모의 감독은 파리목숨으로 유명한데 이 중에는 감독이 연장 계약을 거부했거나 유소년 팀 감독을 대행으로 끌어쓴 적도 있어서 약간은 억울한(?) 케이스도 있긴 하다.[15]맨체스터 시티의 파스토레 제안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난 영어를 못한다.[14]
한편으로는 팀에 수십년간 존재했던 시칠리아 마피아들과의 커넥션을 완전히 단절시켜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살해 협박을 숱하게 받기도 했지만 특유의 기질이 마피아를 상대한다고 어디 가는게 아니라서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인수 후 사재를 털어 클럽을 5회나 유럽 대항전에 보낼 만큼, 구단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구단주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인물.
13. 여담[편집]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좋아하는 클럽이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16]
- 마리오 산타나(2002-2006, 2019-2021)는 팔레르모에서 세리에 4개 리그(A,B,C,D)를 모두 경험하였다.
- 포뮬러 1에서 분홍색 메인 컬러를 쓰던 포스 인디아 포뮬러 원 팀 과 교류를 한 적이 있다. #
[1] #[2] 80%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훈련장과 클럽하우스 건설 시 자본이 투입되며 추가 지분 14.75% 확보[3] 구단주였던 렌초 바르베라의 손자이다. 미리의 외할머니가 바르베라의 누이.[4] 팔레르모 FC 공식 창립 팬 조직. 재창단 시 구단 운영의 투명성을 위해 일부 주식을 팬 조직에게 할당하였으며, 지분은 낮지만 의결권의 10%를 보유중이다.[5] 마르코니가 23-24 시즌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보통 제일 클럽에 오래 있던 선수가 맡는다.[6] 임대 후 완전 이적, 임대료 0.2m, 이적료 1.6m[7] '우리는 독수리다'[8] 나폴리와 팔레르모는 이탈리아 통일 전 이탈리아 남부를 통치한 양시칠리아 왕국의 중심지였다.[9] 2008년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내에서 1,470,000명의 팬들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10] 동유럽 선수를 주로 노린다하여 '팔레르미비치' 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11] 파스토레 매각 후 경기장 설립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 모델을 꿈꿨지만 지자체와 협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12] 팔레르모의 실제 수익 구조는 선수 매각만이 유일한 흑자인 구조였다.[13] 지인이었던 사우디 갑부에게 파스토레에 대해 칭찬을 여러번 했는데 이 사우디 갑부의 친구가 파리 생제르맹 FC 수뇌부였다![14] 맨체스터 시티 감독이었던 만치니가 '난 이탈리아어 할줄 아는데?' 라며 재치있게 받아치기도 했다.[15] 잠파리니 휘하 500일을 넘긴 감독은 단 두 명뿐이다.[16] 단순한 립서비스에 가깝긴하다. https://www.facebook.com/watch/?v=1196411580554913